[분류별 야설] 가죽장갑 - 단편(1) - 딸타임

가죽장갑 - 단편(1)

-가죽장갑-










내가 전화를 받은 것은 형님과 다다미식 일식집 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있던 시각 이었다.










‘응, 난데, 왜?…..응… 뭐…..잘 안 들려, 크게 얘기해라….’










갑자기 높아지는 언성으로 인해 앞에 마주하고 앉아있던 형님의 눈매가 떨리는 것을 나는 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










‘형님, 신사동 청강파 애들이 우리가 전에 접수했던 나이트를 쳤다는 데요?’










‘썅 놈의 새끼들. 그래, 애들은 뭐래?’










‘형님 지금 그럴 때가 아닙니다. 나이트를 쳤다면 형님을 찾아 내는 것은 시간 문제고요, 여기도 위험하지 싶습니다. 뒷문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니, 주방으로 통하는 비상계단을 타고 이 건물의 옥상으로 가십시오. 옥상이 옆 건물과 연결 되어 있으니 놈들 눈치 못 채게 빠져 나가실 수 있을 겁니다. 어서요! 시간이 없습니다. 형수님께는 제가 연락해 놓겠습니다.’










나는 마음이 급했다. 방문을 열고 바깥에서 지키고 있던 아이들 중에서 문쪽에서 가장 가까이 대기하고 있는 한수에게 나는 낮은 목소리로 지시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시를 하면서 나는 문 바깥에 놓아 두었던 내 신발을 슬며시 집어 들고는 앉은 자세에서 구두를 신었다. 그리고는 형님을 대신해서 문간에 앉아 있다가 형님을 일으켜 세워 방을 나가게 하면서 대신 문쪽을 바라보면서 식탁을 마주한 채로 형님이 앉으셨던 자리에 구두발로 그냥 앉았다.










‘한수야, 내 말 잘 들어라, 청강파 애들이 청소를 시작했는가 보다. 너는 형님을 모시고 여기를 조용히 빠져 나가라. 그리고, 아이들 한테는 장비 챙겨서 여기를 지키라고 하고, 밖에 있는 아이들에게는 형님이 아직 여기에 계시다고 해…그리고, 흩어져 있는 애들에게 비상 때리고…’










한수는 내가 아끼는 아이다. 말수가 적고, 의리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요새 젊은 애들 같지 않은 구식 건달패였지만 언제나 급한 일이 있을 때에는 믿고 일을 맡길 수 있는 믿음직한 부하였기에. 한수와 주방으로 통하는 문을 열고 비상계단으로 사라지는 형님을 뒤로 하면서 나는 혹시라도 이럴 때를 대비해서 만들어 놓은 형님과 나만이 알고 있는 한적한 오피스텔로 피신 하시라고 당부했다. 나는 형님이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횟집과 가까운 형님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길게 신호음이 세 번을 넘겼을 즈음에 형수가 전화를 받았다.










‘형수님, 저 윤홉니다. 아무 말씀 마시고, 집에서 빨리 빠져 나오셔야 합니다. 몸이 무거우신 줄은 알지만 되도록 빨리 집 밖으로 나오셔서 자가용 몰지 마시고 택시를 타신 후에, 청담동의 그 오피스텔로 가십시오. 형님께서 기다리고 계실 겁니다.’










‘무슨 일이죠? 뭐 않 좋은 일이라도…’










‘아니 뭐 별거는 아니고요, 가까운 나와바리 에서 충돌이 좀 있어서 예방 차원에서 다른 곳에 가 계시는 것이 어떨까 해서요. 임신중 이신 것은 알지만 형님께서 걱정이 대단하셔서 말이지요. 집안에 있는 애들 좀 바꿔 주시겠습니까?’










‘네, 별일 없어야 할텐데….윤호씨도…… 몸조심…..하세요.’










형수는 이 와중에도 친절하게 내 걱정을 잊지 않는다.










‘헹님요, 저 석군데예.’










‘오, 석구냐? 다른 애들은 모두 이곳 횟집으로 보내고, 너는 형수님 모시고, 차 끌지 말고 택시 타고 형수님이 알려주는 오피스텔로 가라. 알았지?’










‘헹님, 와요? 무신 일인데요?’










‘형수님 옆에 계시니 길게 말할 수는 없고, 그렇게만 알아라. 너 그곳에서 바로 내려오면 사거리에 있는 월미도라는 횟집 알지? 그곳으로 애들이나 빨리 보내, 어서…’










나의 다급한 목소리와 상황을 짐작한 듯한 석구가 옆에 있던 다른 애들에게 지시하는 목소리가 전화를 통해 들렸다. 마지막으로 형수가 다시 전화를 받았다.










‘윤호씨, 정말 아무 일….. 없는 거죠? 저…… 불안해요.’










‘괜찮습니다. 민방위 훈련한다 생각하시면 되죠 뭐. 허허’










나는 형수를 안심시켜야만 했다. 보스의 아내라 할지라도 불안하거나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가는 옆에 둘러선 부하들에게 빈틈을 보이기 십상인 것을. 석구는 내 말을 알아 들었는지 그 특유의 경상도 사투리에 농지거리까지 섞어가며, 다른 애들에게 빨리 이동하라는 말을 하는 것이 들렸다. 이쯤하면 준비는 된 듯 싶었다. 나는 전화를 끊고 접어넣기 전에 전화기에 수록된 전화번호와 송수신 내역을 모두 삭제해 버렸다. 혹시 있을지 모를 사태에 대비하기 위함 이었다. 그때였다. 전화기를 품에 넣고 있는 찰나에 밖에서 우지끈 쿵쾅 하는 소음과 함께 와장창 그릇 깨지는 소리가 범벅이 되어 들려왔고 곧이어 애들의 함성과 고함소리가 들렸다. 벌써 놈들이 치고 들어오는가 보다. 갑자기 창호문이 바스러 지면서 여남은 놈들이 문 밖을 에워싸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와중에 나는 청강파의 넘버투 라고 불리는 흑곰이 구두발로 문지방을 넘는 것이 보였다. 나는 천천히 내 앞에 놓인 술을 들이키면서 웃음을 지어 보였다.










‘흑곰, 오랜 만이네.’










‘형님은 어디 계시나?’










주위를 두리번 거리면서 식탁에 한발을 걸치고 나를 꼬나 본다.










‘화장실 가셨나 보네, 늙어지면 오줌발이 약해서 오래 붙들고 있어야 하잖아? 시간이 꽤 걸리네. 큰 일 보고 계시나?’










나는 태연한 듯이 바깥을 기웃거리며, 시간을 벌고 있었다. 흑곰이 뒤를 돌아다 보면서 아래 것들에게 화장실로 튀어 가라는 눈짓을 할 즈음에, 나는 벌떡 일어나면서 상을 뒤엎어 버렸다. 그 서슬에 한발을 올려 놓고 있던 흑곰이 뒤로 휘청하는 즈음에 나는 몸을 날려 흑곰의 면상에 정통으로 발길질을 먹였다.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나와 형님의 만남은 지금 으로부터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룸싸롱 살해사건으로 인해 조직들이 차례차례 철퇴를 맞고 있었고, 조폭 과의 전쟁이 민주화의 바람을 타고 무슨 유행처럼 번져가고 있을 당시, 나와 형님은 그나마 몇 되지 않은 물 좋기로 소문난 강남의 한 나이트의 뒤를 봐 주고 있는 중간 조직원이었다. 웃 대가리들은 벌써 잠수를 한지 오래 였고, 그나마 표면에 나와있는 피래미들 만이 나와바리를 뺏기지 않으려고 눈에 잔뜩 힘을 주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봉고차 안에는 언제라도 들고 나올 수 있도록 장비(무기)가 가득 차 있었고, 나와 형님은 품속에 회칼을 품고 다녔었다. 둥근 회칼의 손잡이로 인해 양복이 불룩해 보일 수 있었기에 나와 형님은 손에 짝 붙으면서도 양복에 넣어도 밖으로 표가 않 나도록 손잡이를 갈아서 갖고 다녔다. 그러다 보니 나와 형님을 가르켜 짝칼 이라고 부르는 애들도 있었다. 우리는 이미 잠수했지만 위에서 내려오는 명령체계를 타고 중간 보스들의 지시에 의해 틈틈히 어려운 시절을 봐 주고 있는 몇 안되는 짭새(경찰) 들에게 접대와 뽀찌(상납)를 들이 대기에 바빴고, 서서히 조직의 힘을 키우기 위해 다른 사업들에도 손을 대고 있었다. 냄비(여자)들을 끌어다가 오토바이로 실어 나르는 보도집도 몇 개 거느리고 있었고, 단속이 심하기는 했어도 약(필로폰)을 끌어다가 하우스(비밀노름판)로 공급하면서 심심 찮게 뭉태기 돈을 위로 올려 보내기도 했다. 사실 전면에 나서서 총알받이인 행동대를 이끌고 있는 형님과 나 같은 처지는 조직의 덩어리로 볼 때, 없어서는 안 되는 부분 이었지만 역시 소모품과 같은 성격이라 언제 칼침을 맞고 황천길로 간데도 아쉬워 하는 구섞이 없었기에 어서 빨리 자그마한 구역 이라도 이렇게 관리하는 차원이 아니라 제대로 넘겨받아 손에 피 묻히는 시절에서 탈피하고픈 마음 뿐인 시절 이었다.










‘윤호야!’










‘네, 형님!’










‘너 이 생활 한지, 얼마나 됐냐?’










‘형님 모신지 벌써 10년이 다 되갑니다.’










형님은 그 당시에도 가끔씩 나와의 햇수를 곧잘 물으시곤 했었다.










서울에 무작정 상경해서 구두닦이로 시작한 어려운 서울 생활. 나는 사는 것이 그렇듯 고달픈 것인지 처음 알았다. 그 당시 지금처럼 구두 닦는 것이 허가가 없었던 시절, 나는 다른 애들과 마찬가지로 다방에서 닦을 구두를 애걸복걸하며, 기어이 벗겨오는 찍새 생활부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도 만만찮은 일이었다. 누가 갈라 놓았는지 그 사회에는 구역이라고 이름 붙여진 나와바리라는 들어보지도 못한 영역이 존재 했었다. 찍새들은 조폭이 아니었다고 할지라도 그 안에서 살아 남으려면 다른 구역에서 거들먹 거리면서 으름짱을 놓던 다른 찍새들과 완타치로 붙어서 눌러야만 했다. 나는 그 와중에 형님을 만나게 된다.










‘야 이, 씨벌넘들아, 여기가 어디라고 주둥이를 놀려 대면서 남의 신발을 찍어가?’










나는 오늘도 다방에 들어가려던 나를 밀어 제끼는 흑곰 이라는 놈과 또 마주쳤다. 그 놈과 나와의 악연은 그때부터 여적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걸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체구가 장난이 아닌 그놈은 머리가 번개 맞은 것처럼 뻐쩍 선 대다가 색깔까지 누리끼리 해서 모두 다 흑곰 이라고 부르는 악명 높은 찍새중의 하나 였다. 그 찍새의 뒤에 서있는 사람이 다름아닌 형님이셨다. 형님을 제외하고 네 놈이서 다방에 들어가려던 내 멱살을 틀어 쥐고는 골목으로 끌고 가는 것이었다. 나를 뒤따라 오던 다른 찍새들은 어느 사이엔가 그 놈의 폭행에 진저리가 났는지 발른지(도망친지) 오래고, 나만 뻘쭘히 서 있다가 끌려가고 있는 것이었다.










‘너 오늘 한번 죽어 봐. 곰한테 물리고 살아 남는 샤끼는 내가 보덜 못혔응께.’










나는 골목 안에서 구두통을 내려놓고, 흑곰과 마주 섰다. 둘러선 패거리들은 나를 한방에 때려 눕힐 것을 예상했는지, 나를 붙들지도 않고 흑곰의 일격이 기대 되는지 벽에 기대서 침을 찍찍 내뱉고만 있었고…










‘야, 흑곰, 이렇게 여럿이서 쬐끄만 저 새끼 하나 붙잡고 뭐하는 거야. 볼상 사납게 시리.’










형님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도 한발을 지그시 뒤로 빼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형님의 말리는 소리도 아랑곳 하질 않고 흑곰이 선방을 해왔다. 그러나, 동네에서 타고난 쌈꾼 으로 잔뼈가 굵은 나로서는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나는 몸을 옆으로 획 틀면서 황당해 하는 표정으로 나를 비껴가는 흑곰의 당황한 표정을 슬로우 모션처럼 감상하고 있었다. 이어서 나는 흑곰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찍어 밀면서 뒤로 뺀 다리로는 다리를 확 걸어 버렸다. 공중에 붕 하니 떠서는 바닥에 그대로 털썩 나동그라지는 놈을 발로 흠신 짓이기는 와중에, 나자빠진 흑곰이 놀라왔는지 벽에 기대고 섰던 다른 세 놈이 나를 둘러쌌다. 그때까지 형님은 꼼짝 않고 나의 발길질과 날랜 동작을 찬찬히 살피고만 있었다.










‘그래, 씨발, 다 덤벼, 죽고 싶은 새끼들은 다 덤벼 봐. 사내 새끼들이 비겁하게 쪽수로 밀고 지랄 들이야…’










대개 찍새 들은 싸움을 잘 한다기 보다는 쪽수로 설레발을 치고 다니는 것이 보통 이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은 껌 값에 불과했다. 영화에서 면상까지 태권도나 발레처럼 발을 올려 붙이는 놈들은 싸움을 못해 본 놈들이다. 발차기는 정확하고 간결하게 끊어 차면서도 절대로 허리 위로 들이대서는 안 된다. 만일 반드시 발차기가 필요할 때에는 몸을 같이 날려야지 폼을 잡으려다가는 상대가 반드시 한쪽 다리로 학같이 서있는 발목을 잡아채거나 걸어 버리는 것이 싸움판의 생리임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나였기에…앞에 서있는 놈의 불알을 걷어 차면서 나는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한 놈! 옆에서 머뭇거리는 놈에게는 턱주가리에 완펀치를 날렸다. 주먹을 쓸 때는 소리가 중요하다. 기구를 사용하는 모든 운동에는 공이 정확이 맞아서 효과를 보는 슈가 포인트 라는 곳이 있다. 주먹을 날릴 때, 이 슈가 포인트를 맞추지 못했을 때는 소리가 지랄 맞으며, 그럴 때는 별다른 충격 없이 상대가 바로 반격을 해오는 것이 통상적이다. 그래서 이때도 끊어 치면서도 정확이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정확하게 턱을 올려 치듯이 내지르는 타법이 주요한 관건 이다. 두 놈! 세번 째 놈은 벌써 기가 질렸는지 두번 째 놈이 벌렁 대자로 눕기가 무섭게 한발을 뒤로 뺀다. 이때는 서둘러서는 안되고, 이름하야 접근전이 필요 하다. 뒤로 뺀 발과 앞을 지지하고 있는 발은 서로 일직선으로 서 있기 때문에 중심에 취약하다. 이때는 상체를 공격하기에 앞서서 앞 발을 기습적으로 낚아채서 중심을 흐트려 버리는 것이 열쇠다. 아니나 다를까 긴장한 놈은 앞으로 지지한 발목이 채이자, 몸이 벌써 기우뚱 한다. 이때는 바로 위에서 면상이나 등을 내리찍는 강공이 필요하다. 대개 겁을 집어먹은 놈들은 별로 강한 충격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자신이 수세에 몰리고 있다는 생각에 엎어져서 떼굴떼굴 구르기 마련이었고. 세 놈! 나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나를 바라보고만 있는 형님에게 손가락을 까딱까딱 하면서 싸우자는 신호를 보냈다.










‘야, 이제 보니 몸집이 작은 것 빼곤 너, 싸움 좀 할 줄 아는 구나. 야, 이 씨발 놈들아, 저리들 가 있어. 쪽 팔리게시리…’










형님의 호령에 다른 세 명과 흑곰이 충격을 받았던 부분을 쓰다듬으면서 구섞 으로 피했다. 형님이 내 앞에서 두 팔을 들어 보이면서 주먹을 말아 쥐었다. 나는 그 때 당시 그렇게 놀랐던 적이 지금까지 없었던 것 같다. 내 앞에 버티고 서 계신 형님의 몸에는 빈틈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조금 내민 발의 뒤꿈치가 조금 들린 채로 언제라도 내 정강이를 내지를 것 같은 반동력이 눈에 들어온 것도 그렇지만, 굳게 움켜 쥔 주먹에 돌덩어리 처럼 박혀있는 정권의 크기가 나의 호흡을 앗아가기에 충분 했으니까. 만일 그 주먹으로 제대로 맞으면 황천행은 따논 당상처럼 보였다. 그래도 나는 오기가 발동하고 있었다. 형님께서 먼저 나에게 잽을 날렸다. 훅하는 바람소리와 함께 내 코 앞까지 번개같이 밀려오는 주먹의 위세를 여실히 느끼면서 나는 한발 뒤로 물러섰다.










‘제법인데…’










형님은 빙긋이 웃으시면서 상체를 뒤로 트는가 싶더니만 자리에 꼼짝 않고 정면을 주시하고 있는 나의 턱을 보기 좋게 번개 같은 돌려차기로 작열 시켰다. 나는 그 때까지 형님처럼 발을 화려하게 쓰는 싸움꾼을 보질 못했다. 패거리들의 탄성과 함께 이어진 공중의 돌려차기는 나를 강타하고도 내 몸뚱아리를 바닥 저 구섞 으로 밀어버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일어났지만 어지러움증을 느끼면서 온 몸에는 식은 땀이 확 솟고, 무릎이 풀려 앞으로 주저앉고 말았다. 내가 거꾸러지는 것을 눈치 챈 패거리들과 흑곰이 나에게 달겨 들려고 할 때, 형님이 막아섰다.










‘이, 개 좇같은 새끼들 봤나? 야 이 씨부랄 새끼들아, 다른 구역 새끼한테 얻어터진 것도 쪽 팔린데, 한 놈을 상대로 비겁 하게시리 몰매를 때려? 너희들 내 손에 한번 죽어 볼래?’










그러자, 패거리들이 모두 무릎을 꿇고 형님 앞에 머리를 숙였다. 나도 할 수 없이 몸을 추스리면서 형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진자는 말이 없기에…고개를 다들 숙이고 있었지만 바닥을 보고 있는 흑곰은 입술을 문 채로 독기어린 시선을 땅바닥에 꽂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형님은 무릎을 꿇고 있는 흑곰의 가슴팍을 발로 걷어 차면서 소리쳤다.










‘흑곰 너 이새끼, 앞으로 내 눈앞에 얼씬 거리면 국물도 없이 다리를 쪼사버릴 테니까 알아서 해!’










흑곰이 일어서면서 형님을 한번 째려 보는 것 같더니만 다른 놈들을 이끌고 도망치듯이 자리를 떴다. 형님은 나에게 일어나라고 말했다.










‘하도 네 놈이 싸움을 잘 한다기에 내가 따라 나와 봤는데 소문이 틀리진 않구나. 그래 어디에서 찍새 노릇하고 있냐?’










형님은 나에게 그 곳은 벌이도 시원 찮으니 자기 밑에 와서 행동대로 일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 당시 행동대라고 하면 조직의 하부 말단으로서 위에서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해야 되는 고달픈 자리였다. 이른바 총알받이…하지만 능력이 출중하면 나름대로의 출세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자리였다. 나는 가난한 처지에 그 권유가 솔깃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날로 나는 형님을 위로 모시면서 조직의 행동대로 들어갔다. 그게 형님과 나와의 첫 만남이었다. 형님은 언제나 출동명령이 떨어지면 가죽장갑을 끼셨다. 그 이유를 물어 본 적이 있었다.










‘윤호야, 피는 이 장갑이 받아 마셔도 충분하지 않겠냐? 구지 내 주먹에 피를 묻힐 생각이 없다.’










형님은 나에게 출동할 때에는 언제나 쇠파이프를 들고 가라고 일러 주셨다. 야구배트를 들고 가는 애들이 많았지만 야구배트는 보기에 가벼워 보여도 몇 번 후두르고 나면 기운이 빠져서 손목이 부실한 놈들은 무기를 놓치고 앉아서 허둥대기 마련 이라면서. 나는 형님의 뒤를 따라 다니면서 온갖 싸움판에서 화려한 동작으로 상대 아이들을 거꾸러 뜨리는 그 발차기에 매료된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다른 아이들은 싸움이 끝나고 깨진 머리통이나, 부러진 팔등을 추스리기에 바빴지만 언제나 형님은 남보다 겁나게 싸워댔음에도 불구하고 멀쩡한 사지로 본부에 복귀해서 사람들의 칭찬을 한 몸에 받곤 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형님은 남들보다 빨리 주목을 받았고, 조직이 범죄와의 전쟁으로 그 규모를 축소해가는 와중에도 나이트 클럽의 관리를 맡게 되는 놀라운 출세가도를 달리게 되었다. 형님은 그런 중에도 나를 달고 다니는 것을 잊지 않으셨고, 나 또한 남들과 다르게 빠른 속도로 형님과 함께 윗선 으로 전진하는 형국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창 나이트의 물이 달아오르는 11시 즈음에 불심검문이 들이닥쳤다. 사전에 연락이 없이 들이 닥친 것으로 보아 일제단속은 아닌 것 같았다. 알고 지내던 짭새의 모습도 보이질 않아서 우리는 조금 당황하고 있었다. 들이닥친 경찰은 홀에 있던 사람들을 자리에 모두 앉히고 민증을 까라고 호령했다. 신분증이 없다는 사람들을 골라 다른 쪽 구섞 으로 몰아가는데, 그 뒤를 느릿느릿 따라 가던 어리게 생긴 여자아이 하나가 나에게 찰싹 달라 붙었다. 메니져의 명찰을 하고 있는 나에게 그녀는 사정하는 얼굴로 나즈막 하게 말했다.










‘오빠, 저 좀 살려 주세요. 저 고등학생 이거던요. 저 집에서 알면 죽어요.’










그때 느즈막히 헐레벌떡 하면서 우리와 잘 알고 지내는 김 형사가 들어섰다. 나에게 눈짓을 하면서 자기도 몰랐다는 표정을 짓는다. 썅눔의 새끼! 받아 쳐먹을 것은 다 받아 쳐 먹으면서 이럴 때 전화라도 해주면 손가락이 비틀어 지기나 하남! 나는 내 옆에 찰싹 붙은 여자 애를 끌다시피 하면서 김 형사 곁으로 다가갔다.










‘김 형사님, 어떻게 된 거에요?’










‘나도 몰랐 다니깐 두루. 상부에서 갑자기 들이닥치는 바람에 나도 정신이 하나도 없어. 그런데 이 년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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