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별 야설] 근친으로 점철 된 내 인생 - 단편 - 딸타임

근친으로 점철 된 내 인생 - 단편

근친으로 점철 된 내 인생근친으로 점철 된 내 인생

먼저 내 나이는 이미 얼마 안 있으면 칠순을 바라보는 나임임을 밝힌다.

이 나이에 무슨 이런 곳에서 글을 읽느냐고 묻겠기에 먼저 그것부터 밝히겠다.



칠순을 앞둔 나의 소일거리라고는 인근 공원에서 노인들 틈에 끼어서 수다를 떨거나 백 원짜리 고스톱을 치는 것이 유일 무일한 소일거리이다.

그런데 남자라는 존재는 옛 말대로 기어서 문지방만 넘을 힘을 가지면 빠구리를 할 수가 있다고 했다.(사실 빠구리란 단어를 칠순 나이에 입으로 말한다는 것이 쑥스러운 일이라 생각하였지만 야설을 올리는 곳을 알게 된 이후 거리낌 없이 사용한다.)

그러니 늙은이들이 모인 곳이라고는 하지만 빠구리에 대한 이야기도 자주 입에 오르내리곤 한다.

그들 중에 나와 연배가 비슷한 노인이 하나 있는데 그 노인은 여자 보지구멍 앞에서는 맥을 추지 못 하고 수그러들지만 이상하게 자기가 아는 야설을 올리는 곳에서 다른 사람이 올린 야설을 보면서 딸딸이를 치면 힘이 난다는 것이었다.(사실 이 나이에 딸딸이란 용어를 쓰는 것도 쑥스럽다. 하지만 나도 그 노임이 말한 야설을 올리는 공간을 알고 또 읽고부터는 딸딸이란 단어며 빠구리란 단의 등등의 험한 단어도 사용하지만 쑥스러운 느낌이 들지 아니하였다.)

그리고 그런 글들을 읽으면서 난 의외로 우리나라에도 근친이 많음을 알게 되었고 그리고 나 역시 그 근친을 자주(?)경험을 한 놈으로서 용기를 내어서 고백을 하려한다.



참 늙은 나이에 컴퓨터를 한다는 것을 이상하게 보지는 말라.

지금 내가 사용하는 컴퓨터는 손자 녀석이 새것을 장만하였다며 버린다기에 나에게 달라고 하여 글자 연습이나 하려던 것을 앞에서 말한 영감 덕에 인터넷이란 것을 연결하여 사용하고 있는데 거의 고물에 가까운지 아주 속도가 느린 것이 흠이다.



사실 내 인생의 빠구리 인생으로만 본다면 처음도 근친이고 지금도 자주는 아니지만 근친의 연속이라도 보아도 될 것이다.

또한 이 나이에 나와 나이는 조금 어리지만 남이 아닌 어떤 여자하고(역시 근친이며 마지막에 이야기 하겠다.)생리가 끊긴 상태의 여자이지만 지금도 간혹 빠구리를 하고 있는 것도 야설을 읽고 야설대로 해 보니 안 아파하기에 지금도 간혹 아니 일주일이면 적어도 한 번 이상은 빠구리를 하고 있다.

참 지금 난 상처를 하여 혼자 살고 있다.)



근친!

그 시작부터 먼저 이야기 하겠다.



그건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내가 어려운 가정 사정에도 불구하고 고향을 떠나 큰집에서 기거하며 고등학교에 입학을 하였던 해의 여름방학 때 일일 것이다.

지금부터 무려 53년 전의 어려운 시절에 고등학교에 다닌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모든 사람들로부터 동경의 대산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도 읍내의 중학교와 같이 있던 고등학교에 다니는 것도 감지덕지해야 할 처지에 큰집이 있던 도회지의 고등학교에 다닌 다는 것은 우리 면 자체에서도 유일한 유학생이 나였다.



그러니 여름방학에 되어서 집으로 오자 난 거의 일주일 이상을 주변 사람들에게 인사를 다녀야 하였을 정도였다.

인사를 하지 않으면 도시 물을 먹고 건방지다는 말을 듣지 않아야 된다는 것이 아버지의 지론이었고 난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인사를 다녀야 하였다.



그렇게 인사를 다니는 도중에도 내 곁을 떠나지 않고 졸졸 따라다니는 계집애가 있었으니 그 애는 바로 우리 이웃에 살던 엄마의 오빠 딸 즉 나로 보면 외삼촌의 딸이니 바로 외사촌 여동생이었다.

은심이! 그래 은심이였다.

당시 국민 학교(요즘의 초등학교)6학년인 은심이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우리 집으로 마치 출근을 하듯이 와서는 자기 집처럼 우리 집을 생각하였고 그리고 우리 집의 모든 식구들에게 보라는 듯이 퍼질러 앉아서는 아침밥도 함께 먹었고 그리고 내가 인사를 하러 나가면 시쳇말로 마치 나의 보디가드라도 되는 듯이 내 옆에 버티고 서서 함께 다녔었다.



정말이지 처음에는 귀찮은 존재였다.

내가 자기 눈으로 보기에도 싫어하는 기색을 하였지만 은심이는 모른 척 하고 내 옆에 붙어서 따라다녔다.



“은심아 넌 남자 친구도 없니?”아마 그날은 일요일이었을 것이다.

“오빠 왜? 많아”나를 올려다보며 대답을 하기에

“그럼 남자 친구하고 놀지 왜 날 따라다녀?”내려다보며 물었다.

“!”순간 난 꾸깃꾸깃한 블라우스 너머로 난 은심이의 막 부풀기 시작한 젖멍울을 보고 말았다.



읍내 중학교에 다니면서 배우기 시작한 자위의(시쳇말로 딸딸이라고 하기에 앞으로 딸딸이로 포기함)진가를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큰집 이웃의 신혼부부가 하는 빠구리 모습을 직접 목격하고는 알기 시작한 나로서 은심이의 블라우스 너머로 본 젖멍울은 나의 좆을 부풀게 만들기에 아주 충분한 역할을 하기에 이르렀다.

“오빤 내가 같이 다니는 것이 싫어?”아무 것도 모르는 은심이가 나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아.....아니 그게 아니고”더듬거리면서도 나의 시선은 은심이 블라우스 너머로 보일락 말락 하는 젖가슴에 가 있었다.

“어머 오빠 엉큼하긴?”그때서야 나의 시선이 자신의 젖가슴에 있다는 것을 눈치 차린 은심이가 블라우스 윗부분을 감싸 잡으며 눈을 흘기더니

“고개 돌려”하고 얼굴을 붉히는가 싶더니

“궁금해?”나의 손을 잡으며 물었다.

모든 주도권이 고등학생이 내 손에서 겨우 국민 학교 6학년인 외사촌 여동생에게 넘어 간 순간이었다.

“조....조금”더듬거리며 말하자

“보여 주면 오빠 따라다닌다고 타박 안 할 거야?”내 손을 잡은 은심이 손에서 땀이 배어나온 것을 느끼는 순간이기도 하였다.

“그.......그래”더 더듬거렸다.

“저기로 올라가자”땀이 배어나온 손에 힘이 들어가는가 싶더니 다른 손으로 산길을 가리켰다.

근친의 서곡이 울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헤헤헤 많이 크진 않지만 우리 학교에서는 아마 내 젖이 가장 클 걸”산길로 접어들자 은심이가 과감하게 블라우스 가장 위의 단추를 풀며 말하였다.

요즘이야 러닝셔츠가 조금만 헤어져도 입지 않지만 당시에 은심이의 러닝셔츠는 곳곳이 기운 상태였다.

그리고 꼬지지하기까지 하였지만 내 눈에는 이미 작을 탱자 크기 정도로 부풀어 오른 은심이의 젖가슴이 전부였다.

“야 예쁘다”난 시선을 때지 못 하였다.

“헤헤헤 이제 신작로에서 여기 안 보이겠지?”바위에 걸터앉으며 말하였다.

“으......응”대답은 하였지만 신작로고 뭐고 간에 나의 괸심 밖의 것이었고 오로지 나의 관심은 은심이의 젖가슴에 있었다.

“오빠 헐래 해 봤어?”외사촌 동생 은심이 입에서는 놀라운 말이 나왔다.



요즘에는 헐래란 용어를 사용하는지 모르지만 당시에는 개하고 개가 빠구리를 하는 것을 헐래라고 하였고 일반적으로 빠구리를 헐래란 단어로 사용하였다.

그런데 겨우 국민 학교 6학년 꼬맹이 입에서 그런 단어가 나왔으니 놀라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아니 너!”놀라며 젖가슴에서 시선을 때고 얼굴을 보며 말하자

“헤헤헤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우리 반에 향심이 년이 자기 동네 중학생 오빠하고 했다고 소문이 났거든. 오빤 해 봤어?”그 말 자체도 놀라운 내용이었지만 그 말을 하면서 하는 은심이의 행동은 더 나를 놀라게 만들었다.



놀랍게도 은심이는 그런 충격적인 말을 하면서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여전히 잡고 있던 내 손을 올리더니 자기의 막 부풀기 시작한 젖가슴 위에 얹어주며 말하지 뭔가!

“으.....은심아!”난 은심이 젖가슴을 잡았지만 사시나무 떨 듯이 마구 떨고 있었다.

“비밀 지킬게 만져”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가슴을 내밀었다.

“빠.......빨아도 되니?”난 큰집과 이웃한 신혼부부의 남편이 자기 아내 몸 위에 올라타고 펌프질을(이 용어도 야설에서 보고 처음으로 씀)하면서 젖가슴을 마구 빨던 것을 기억하며 은심이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응 오빠 마음대로 해”역시 대수롭지ㅏ 않다는 듯이 대답하였다.



“히히히 간지러워 히히히”내가 은심이 젖꼭지를 일으로 빨자 은심이가 몸을 마구 비틀며 웃었다.

“이래도?”앙 과감하게 은심이 치마 밑으로 손을 넣고는 사리마다 위로 보지둔덕을 주무르며 다시 젖꼭지를 빨았다.

“오빠 헐래 하려고?”은심이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싫니?”빼앗겼던 주도권이 다시 나에게 오는 순간이기도 했다.

“오빠하고 라면 싫은 것은 아니지만........”은심이가 가랑이를 벌리며 말하였다.

“좋아 헐래 하려면 더 올라가자”난 은심이 몸에서 손을 때며 말하였다.

“응”은심이가 나를 따라 일어섰다.

“!”그리고 나의 팔을 어깨너머로 돌리더니 손을 자기 젖가슴 위에 얹어주었다.

난 자연스럽게 은심이 젖꼭지를 매만지며 산으로 더 올랐다.

그리고 빠구리를 하고 나면 씻어야 한다는 생각에 골짜기로 향하였다.



금년 가을 부모님 산소 벌초를 하려고 시골로 갔다가 들렸던 곳인데 가을의 일요일이지만 내가 은심이하고 첫 빠구리를 한 장소였던 그 계곡은 많을 사람들로 북적였고 은심이와 나가 첫 빠구리를 하였던 바위 옆에는 아주 큰 펜션이 들어서 있었다.

또 그 바위 옆에는 대형 파라솔이 몇 개 둘러쳐 있는 것으로 미루어 낮잠을 자는 장소로 사용이 되거나 아님 음식을 먹거나 하는 상으로 사용 되고 있다는 것을 바위 옆을 감싸며 둥글게 놓인 의자가 이를 증명 하고 있었다.

은심이와 나가 처음으로 빠구리를 한 장소를 사람들이 상으로 사용한다는 사실에 우습기만 하였다.



“여기 좋지?”바위에 걸쳐 않게 은심이를 보듬어 올려 주며 말하자

“응”그때서야 내가 자기하고 빠구리를 할 것이란 생각이 부끄러웠던지 얼굴을 붉히며 대답하였다.

“싫으면 말고?”다시 한 번 확인을 할 필요를 느끼며 물었다.

“싫은 건 아니고.......”은심이가 말을 흐리기에

“그럼 뭐?”다시 묻자

“무서워.......”은심이가 대답하였고 동시에 난 은심이의 시선이 내 바지 가장자리에 있음을 알았다.

“좆 안 봤어?”바지 지퍼를 내리며 난 은심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은심이가 고개를 끄떡였다.

“그럼 봐”이미 발기가 되어 호박이 아니라 생 무라도 찌를 기세인 발기 된 좆을 끄집어내어 은심이이게 보여주며 말하자

“와 오빠 그게 전부 들어간단 말이야”은심이가 토끼눈을 하고 나의 좆을 바위 위에서 내려다보며 묻기에

“응 옷 벗어”좆을 잡고 흔들며 말하자

“그.....그래”은신이가 일어서며 말하더니 치마를 올리고 팬티를 내렸다.

사실 요즘 같은 시대였고 매너였다면 내가 직접 옷을 벗기는 매너를 보였겠지만 당시엔 그런 매너라는 것은 전혀 몰랐기에 은심이에게 스스로 벗도록 했던 것이다.



“!”벗고 날 잡아 잡수시오하고 누운 은심이의 보지는 밋밋함 그 자체였다.

앞에서도 몇 번 언급을 하였지만 큰집 이웃의 신혼부부가 빠구리를 하는 모습을 수차례 훔쳐봤지만 그 여자의 보지는 털로 뒤 덥혀서 보지의 금은 물론이고 구멍도 보이지 아니하였지만 남자의 좆이 자기 아내 보지에 박힌 것을 보고 보지라는 것을 알 정도로 털이 무성하였지만 은심이 보지는 금도 확연하게 보였고 바위로 올라가 은심이 옆에 앉아 보지 금을 벌렸더니 작지만 좆이 들어갈 구멍도 확연하게 들어났다.



또한 놀라운 것은 내가 만지지도 아나하였지만 은심이 보지구멍에서는 작았지만 이미 물이 배어나온 상태였다.

난 그것을 보고 어서 박아 달라는 은심이 마음이라고 생각하며 서둘러 바지를 벗었고 사리마다도 벗었다.

깔개가 하나도 없는 바위 위라 은신이 가랑이를 벌리고 무릎을 꿇자 무릎이 아파서 바로 은심이 몸 위로 몸을 포갰다.



“정말 처음이지”좆을 잡고 은심이 보지구멍 입구에 대고는 상체를 들고 젖가슴을 짚으며 물었다.

“오빤 보고도 몰라?”은신이가 눈을 흘기며 물었다.

“좋아 입 앙다물어”하체에 약간의 힘을 주며 말하자 은심이가 두 손으로 입을 가리는 순간

“에잇!”하체에 힘을 줬다.

“악 오빠 아파 가만 흑흑흑”은십이가 낮은 목소리로 흐느끼기 시작하였다.

“상체를 더 높이 들고 밑을 봤다.

내 좆은 거의 삼분의 이 이상이 외사촌 여동생인 은심이 보지 안으로 자취를 감춘 상태였고 그리고 은심이가 처녀였음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검붉은 피가 좆과 보지 틈으로 베어 나와 있었다.

내 좆이 최초로 여자 보지구멍 안에 박힌 것이었고 근친의 시작이기도 하였다.



그로부터 방학은 물론이고 조그마한 핑계거리만 생겨도 난 시골로 내려갔고 그리고 어른들의 눈치를 피하며 시도 때도 없이 은심이하고 빠구리를 즐겼다.

처음 여름방학 때 시작한 은심이와의 근친이었지만 지금 생각하여도 아찔한 것은 이미 생리를 하고 있던 은심이였지만 고맙게도 임신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난 도시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돈이 생기기만 하면 콘돔을 샀고 그 콘돔은 시골로 내려 온 즉시 은심이 손에 전달이 되었고 내가 눈치만 주면 은심이는 나를 따라왔고 그녀의 주머니에는 항상 콘돔이 대기 중이었을 정도였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에 가 있을 때도 몇 번 은심이는 자기 부모님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군대로 면회를 와서는 보지를 벌려주었다.

그리고 공장에 다니며 열심히 일을 할 때도 몇 번인가 나의 자취집으로 와선 벌려주었고 은심이가 23살이 되던 해의 초가을에 울면서 찾아와서는 시집을 가게 되었다며 마지막으로 가랑이를 벌려주었다.

하지만 그게 마지막은 아니었다.

친정의 기제사나(외갓집 기제사지만 은심이가 온다는 것을 알기에 나도 참석하려고 노력하였음) 명절에 친정에 들릴 경우에는 남편과 가족 그리고 이웃의 눈을 피하여 빠구리를 하였으며 심지어는 아이를 낳고 엎고 나와서는 뒤치기로 나의 좆 물을 받으며 울기도 하였다.

그녀가 운 이유는 자기 남편과 빠구리를 하면서 자기 남편을 사촌오빠인 나라고 생각을 하지 않으면 하나도 흥분이 안 되어 남편하고 빠구리를 할 때면 항상 수건으로 입을 가리고 빠구리를 하는데 처음에는 남편이 의아해하였지만 입을 가리지 않고 빠구리를 하면서 마구 떠들었더니 그 후로는 하려고 하면서는 먼저 수건을 가져와 직접 입을 가려주고 한다며 어 슬픈 미소를 지어보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도 부모님들의 권유를 뿌리치지 못 하고 결혼을 하였지만 마누라하고 잠자리는 그리 원만하지 못 하였다.

은심이가 그랬듯이 나 역시 마누라 몸 위에 올라가 좆을 박으면 마누라 얼굴이 은심이 얼굴로 변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현실이 은심이가 아닌 마누라임을 알게 되면 알게 된 즉시 사정을 해 버리는 것이었다.

마누라가 빠구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었기에 마누라가 죽을 때까지 같이 살았지만 빠구리l 맛을 하는 여자였더라면 아마 난 조루증 환자 취급을 받고 이혼을 당했을지 모를 노릇이었을 것이다.



은심이가 두 번째 아이를 낳고나자 나를 피하기 시작하였다.

나로서는 새로운 도피처를 찾아야 할 지경이 이른 것이다.

마누라에게서 만족을 얻었다면 그러지 않을 을 것이다.



다행이었던(?) 것은 이비오락이라고 했던가!

은심이하고 사이가 소원해 질 무렵 나에게 또 하나의 은인이(?) 찾아왔으니 이번에는 마누라의 사촌여동생이었다.

시골에서 고등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사촌언니인 내 마누라에게 애걸복걸을 하며 일자리를 구해 달라고 하소연하였고 그 덤터기는 다시 나에게 날아왔으며 마친 내가 일하던 공장에 말이 좋아 경리이지 심부름이나 하고 전화나 받는 여자가 필요하다는 말에 마누라 사촌여동생을 추천하였더니 현장의 최고 책임지인 내 말을 무시 하지 않고 받아주었는데 문제는 먹고 잘 곳이 없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친정집의 논밭 일부가 아파트 단지에 편입이 되면서 받은 보상금으로 인하여 졸부소리를 듣고 살지만 당시에 처삼촌 댁은 가난에 찌들어 도시에 취업을 하였지만 자취방도 하나 얻어줄 처지가 되지 아니하였다.

하여 당분간만 우리 집에 기거를 하기로 하였던 것이었다.



지금은 우리 집 부근도 많이 개발이 되어 많은 아파트가 들어서 있지만 당시에는 거의 허허벌판이나 다름이 없었고 지금은 깎아서 역시 아파트가 들어섰지만 당시에는 몇 기의 무덤이 있는 야트막한 야산도 하나 있었던 한 적한 곳에 우리 집이 있었다.



문제는 출퇴근이었다.

요즘은 번화가가 되어 시내버스도 분 단위로 있고 개나 소나 가자고 잇는 것이 자가용이지만 자가용이 귀하였던 당시에는 10분 정도의 허허벌판을 걸어가서 또 버스를 타고 20분정도 가야 하였다.

다만 난 자전거가 있어서 지름길로 갔기에 15분 정도면 공장에 도착을 하는 것이었다.

문제가 있다면 자전거를 끌고 우리 집 바로 뒤에 있는 야트막한 산길을 걸어서 넘어야 하는 고충은 있었지만 운동 삼아 넘었다.

그렇지 않고 버스가 다니는 길로 간다면 40분이 넘게 걸리는 곳에 공장이 있었다.



그래 나야 아무 문제가 없지만 문제는 사촌 처제의 출퇴근이 문제였다.

현장에서 잔업이라도 할라치면 같이 잔업을 해야 하는 처지였다.

그런데 허허벌판을 10분 혼자 걸어온다는 것도 문제였다.

또 지름길인 산길을 처녀 몸으로 혼자 걷는다는 것은 말 그대로 위험한 곳이었다.



마누라가 부탁을 하였다.

짐자전거로 바꾸어서 뒤에 태우고 다녀달라고 말이다.

당시 자가용은 아니지만 오토바이 정도는 타고 다닐 정도의 형편이었지만 마누라의 반대로 자전거를 탔었다.

하지만 마누라의 그 말은 나에게 구세주로 들렸다.

짐자전거를 구입하였다.

대신 마누라에게 짐칸을 구분하는 철근으로 딘 것은 비싸서 안 샀다고 둘러대었다.

그게 있으면 사촌처제 요즘 흔히 말하는 스킨십이 쉽지 않을 것을 예상하고 말이다.



가능하다면 또 하나의 근친이 연결이 될지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말이다.

아마 마누라 입장으로는 자기하고 빠구리를 하면서도 보지구멍에 좆을 박자마자 싸 버리는 남자에게 어느 여자가 붙어먹을까 하는 그런 안심이 되었기에 그렇게 하기를 부탁하였을 것으로 지금도 추정을 하고 있다.



사촌처제는 딸아이하고 한 방을 썼다.

졸업식도 하기 전에 왔었기에 한 겨울이나 다름없었다.



“처제 타”난 첫날부터 야트막한 산길을 걸어서 길로 나와 처제를 자전거에 태웠다.

“예 형부”처제가 자전거에 올라탔다.

처음엔 산길을 올라야 하였기에 마누라가 배웅을 하면서도 우리의 모습을 상상도 하지 않은 듯이 손을 흔들어주었다.

“내 허리 잡고”뒤돌아보고 말하였다.

“예 형부”처제가 말을 하면서 허리를 부여잡았다.

보지 않았지만 처제가 얼굴을 붉히고 있다는 것은 단박에 알았다.

그건 바로 내 등에 닿은 처제의 심장 박동이 그것을 말로 대신하였다.

난 좆아 죽어라 좆아 죽어라 패달을 밟으며 속으로 노래를 불렀다.

그러면 그럴수록 나의 좆은 더 발기가 되어 가는 것 같았다.

공장에 도착을 하기 무섭게 화장실로 달려가 소변을 봄으로서 발기 된 좆을 죽일 수가 있었다.

난 그렇게 몇 주를 사촌처제의 뛰는 심장소리를 느끼며 마음으로만 사촌처제하고 간음을 하였다.



그리고 처제는 시골로 내려가 졸업식을 하고 다시 올라왔다.

“처제 졸업 선물 못 했는데 뭐로 해 줄까?”퇴근을 하면서 우리 집과 연결이 되다시피 한 야트막한 산길을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며 물었다.

“아뇨 형부 공장에 취직을 시켜 준 것 만으로도 저에게는 큰 선물이나 다름없어요.”처제가 얼굴을 붉히며 대답하기에

“그런가? 그럼 그 큰 선물에 작은 보답은 어때?”난 이미 사촌초제하고 근친을 상상 아니 그 이상을 하고 있었기에 시험에 들기로 한 것이었다.

“어떻게?”처제가 물었다.

“여기에 뽀뽀 싫으면 말고”난 손가락으로 내 볼을 짚으며 웃었다.

“아이 형부는?”처제가 눈을 흘겼다.

“그러니 싫으면 말라고 했잖아?”마치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을 하였지만 난 처제의 눈치를 살피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싫은 게 아니라 걸으면서 어떻게 해요”사촌처제가 눈을 흘기며 말하기에

“좋아 그런”난 발걸음을 멈추었고 구리고 볼을 처에 입 앞에 대었다.



“읍!”처제 입이 볼에 닿으려 하는 손간 고개를 돌렸고 그리고 자전거를 잡은 손으로 처제 볼을 잡았다.

사촌처제의 눈이 일순간 부릅뜨는가 싶더니 이내 눈을 감았고 내 혀가 입술을 뚫고 들어가자 체념을 하였다는 듯이 내 혀를 조심스럽게 빨기 시작하였다.

난 사촌처제가 혀를 빨기 시작하자마자 거부를 하는 것이 아님을 직감하고 젖가슴을 주무르기 시작하였다.

혀를 빠는 처제의 호흡이 점점 거칠어졌지만 거부는 하지 않았다.

거치적거린 것은 사촌처제와 나 사이에 있는 자전거였다.

자전거만 아니라면 발기된 좆을 사촌처제의 하체에 밀착을 시키고 문지르면서 키스와 주무르기를 병행하고 싶었다.

하지만 첫 근친을 시작하였던 외사촌 여동생 은심이와는 달리 성급하게 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날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키스와 젖가슴의 주물림으로 끝냈다.

“비밀 지키지?”긴 키스 끝에 사촌 처제의 몸에서 떨어지며 물었다.

“예 형부”사촌처제 향린이가 대답을 하며 얼굴을 붉혔다.

“섹스 경험 있어?”다시 자전거를 끌고 가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뇨”향린이가 고개를 숙인 체 도리질을 치며 강하게 아님을 강조하였다.

“내가 하자고 하면 어쩌겠어?”자전거 안장을 짚고 나란히 걷는 향린이의 손등에 손을 올리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몰라요 몰라”손을 빼지도 않으며 대답도 하지 아니하였다.

“날씨 따스해지면 여기에 이게 들어 갈 거야 알았어?”난 사촌처제 향린이의 바지 위이지만 정확하게 보지 둔덕을 손에 댔다가 다시 그 손을 내 좆에 짚으며 말하였다.

“.............”향린이는 얼굴만 붉힐 뿐 아무 말도 없이 땅만 보고 걸었다.

그리고 그날부터 출퇴근을 하면서 야트막한 산길을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면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서로 보듬고 키스를 하였고 그리고 주물렀다.

첫 키스 한 다음 날 퇴근을 하면서 행한 키스에서는 난 아주 과감하게 사촌처제 향린이 바지 안에 손을 넣고 보지둔덕을 주물렀고 일주일이 지나서는 향린이도 나 바자 안에 손을 넣고 좆을 주무르는 사이로 발전을 하였다.

물론 주무르기 시작하면서부터 향린이는 가급적이면 치마를 입어주었다.

물론 집으로 오면 거의 사무적으로 대하면서 말이다.



“이제 날씨 따스해졌지?”그해 춘삼월을 알리는 진달래가 피기 시작하던 날 퇴근길에 난 향린이에게 물었다.

“............”향린이가 얼굴을 붉혔다.

향린이도 나의 말뜻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첫 키스를 한 후에 내가 <날씨 따스해지면 여기에 이게 들어 갈 거야 알았어?>라고 한 말을 향린이도 기억을 한다는 뜻이었다.

“싫어?”산길에서 자전거를 숲속으로 끌고 가며 물었다.

“.............”향린이가 도리질을 쳤다.

조금 안으로 들어가자 진달래꽃으로 둘러싸인 것이 자그마한 무덤이 2개 있었고 그 무덤 사이에는 아직 나지는 아니하였지만 누워도 등이 박히지 않을 것 같은 마른 잔디가 덮여 있었다.

“여기 좋지?”자전거를 넘어트리며 묻자

“.............”향린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옆으로 가 향린이 치마의 호크를 풀었다.

소리 없이 향린이 치마가 잔디 위로 나풀거리며 앉았다.

블라우스를 벗겼다.

러닝셔츠와 브래지어도 벗겼다.

난 항상 가지고 다니던 작은 가방에서 신문지를 꺼내서 폈다.

향린이는 알았다는 듯이 다소곳이 신문지 위에 누웠고 그리고 외면을 한 체 두 손으로 젖가슴과 팬티 위의 보지둔덕을 가렸다.

나도 부리나케 바자와 팬티를 벗었다.

그리고 향린이 옆으로 가서 조심스럽게 팬티를 벗겼다.

향린이는 엉덩이를 들어주었다.

검을 보지 털 사이로 물방울이 나온 것이 보였다.



“각오 되었지?”조심스럽게 사촌처제 향린이 보지 금을 벌리며 물었다.

“..............”대답 대신 고개를 끄떡였다.

“간다! 에잇!”보지 구멍 입구에 좋이 닿자마자 힘을 줬다.

“악 형부 잠간만 흑흑흑”산촌처제 향린이 역시 외사촌 여동생 은심이처럼 흐느꼈다.

상채를 들고 밑을 봤다.

사촌처제 향린이도 외사촌여동생 은심이 보지처럼 난 처녀요 라는 듯이 검붉음 선혈을 나에게 선물하였다.

그리고 사촌처제 향린이는 우리 집에서 나가 자취방을 구하고도 일주일이면 세 번 이상을 나에게 보지를 벌려주었다.

25살이란 나이로 시집을 가기 전까지 말이다.



결혼을 하고도 향린이는 우리 집을 자기 친정으로 생각하고 들락거렸고 자기 남편하고 싸움이라도 하고 집을 뛰쳐나온 날이면 나와 합세하여 마누라에게 술을 잔뜩 먹여 곯아떨어지게 한 후에 마누라에게 보이기라도 하듯이 마누라 옆에서 빠구리를 하는 날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와 근친을 한 여자들은 한 결 같이 아이 둘을 낳기만 하면 나를 멀리하였다.

향린이가 나를 멀리한 것은 내 나이 사십이었다.



난 여전히 마누라 보지 앞에서는 조루증 환자였다.

또 다른 근친이 필요하였다.

하지만 주변에 나와 근친을 할 만한 여자는 없어보였다.

근 십 여 년을 근친은 하지 못 하고 대신 내가 책임자로 있던 공장에 다니던 아줌마들을 상대로 몸을 풀었지만 그건 푸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근친을 더 찾게 만드는 촉진제 역할만 하였다.



내 나이 50이 되던 해에 뜻 하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금술이 좋기로 소문이 났던 처남이 그만 사고로 비명횡사를 하고 만 것이었다.

그 전부터 처남댁에게 마음을 두고 있었지만 요조숙녀로 소문이 날 정도로 몸가짐을 조심하였던 처남댁이었기에 엄두도 내지 못 한 그런 상대였다.



문제는 처남댁의 시동생들의 마누라들이 문제였다.

사고로 처남이 죽은 관계로 처남댁에게 위자료가 엄청 많이 나왔는데 그것에 혀를 날름대기 시작한 것이었다.

처남의 혈육은 우리 마누라가 유일하고 우리 마누라 역시 동생인 처남이 유일하였기에 처남댁은 우리 마누라를 친정엄마처럼 여겼기에 그 일도 우리와 상의를 하기에 이른 것이다.

마음 약한 마누라도 처남의 시동생 마누라들하고 생대하기가 버거웠던지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다.



처남댁은 시동생 마누라들에게 자기와는 대화가 안 되니 모든 것을 나와 이야기 하라고 미루어버렸다.

그들의 유일 무일한 대화 창구는 나였다.

난 처남댁이 처남이 죽은 대가로 나온 위자료에서 단 한 푼도 가질 이유가 없고 법적으로도 의무가 없다고 하였다.

처남댁의 시부모님들이 계시다면 그분들에게 얼마를 드릴 수는 있겠지만 시동생들에게 줄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했다.

되레 대학을 처남이 보냈으니 그에 대한 보담을 시동생들이 형수에게 해야 된다고 하며 고집 아닌 고집을 부렸다.



그리고 그들과 만나면 바로 처남댁 집으로 가서 보고를 하였다.

참고로 처남댁은 시동생 마누라들의 극성에 견디지 못 하겠기에 집도 이사하였고 그리고 전화번호도 모조리 바꾼 생태였고 하나 뿐인 아들도 군대에 가 있었기에 시동생 마누라들은 그들이 아는 처남댁과 관계가 되는 유일한 인물이 나를 상대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나 역시 그년들이 미행을 하는 것이 두려운 나머지 가능한 한 대중교통 그도 아주 복잡한 것만 골라 탔고 그도 가다가 바꾸어 타는 등 그년들 혹은 그년들에게 돈을 받고 미행을 할지 모르기에 아주 교모하게 움직였다.



“아~흑 여보 흑흑흑”그날도 공장에서 근무하는데 년들의 요청으로 만났다가 처남댁에게 보고를 하려고 찾아 갔다.

그런데 안방에서 이상한 신음소리에 발소리를 죽여 가며 안방 문 앞에 갔고 조금 열려진 틈으로 나는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 말았다.

처남댁이 처남의 영정을 치마 앞에 놓고는 자신의 손으로 보지둔덕을 문지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또 다른 근친의 늪으로 유혹을 한 것이었다.

소리를 죽이며 안방으로 잠입을 하였고 그리고 순식간에 처남댁 치마 앞에 놓인 처남의 영정을 빼앗고는 그 영정을 덮었고 그리고 처남댁을 끌어안고 기습적인 키스를 감행해버린 것이었다.

처남댁이 토끼눈으로 날 봤다.

하지만 틈을 주지 않고 난 처남댁 치마 안으로 손을 넣었고 그리고 팬티가 무릎까지 내려온 것을 알고는 손가락을 보지구멍에 쑤셔버렸다.



“아~고모부”긴 키스 끝에 처남댁이 한숨을 내쉬었다.

“좋아요?”손가락으로 아주 요란하게 펌프질을 하며 물었다.

“몰라요 몰라”내 팔목을 잡고 말하였지만 힘은 없었다.

“자 만져요”난 처남댁이 반항을 하지 않고 팔로 내 목을 감고 들어간 나의 혀를 빨기 시작하자마자 꺼낸 좆을 처남댁 손에 쥐어주었다.

“고모 알면”내 좆을 잡았지만 떨고 있었다.

“지금 전화로 방송 할 가요?”휴대폰을 꺼내며 말하자

“그건 아니지만.......”처남댁이 말을 흐리기에

“우리만 입을 열지 않고 주의 하면 괜찮아요? 안 그래요?”더욱 빠르게 손가락으로 펌프질을 하며 묻자

“그건 그렇지만”하고 말하기에

“그런 어서 혁대 풀어요.”혁대에 손을 대어주며 말하자

“이럼 안 되는데”처남댁이 내 혁대를 풀며 나지막하게 말하였다.

그러자 난 바지와 팬티를 조금 내리고 바로 처남댁 보지구멍 안에 들어간 손가락을 빼고는 가슴을 밀쳐 눕히고는 치마를 들치고 좆을 그대로 처남댁 보지구멍 안으로 박아버렸다.

그리고 난 손과 발을 이용하여 바지와 팬티를 완전하게 벗었다.

밑에 깔린 처남댁은 자기 젖가슴을 짚은 나의 팔목을 잡고 도리질을 치고 있었다.



또 하나의 근친이 시작이 된 것이다.

처남댁 시동생 마누라들과의 협상 결과 보고는 핑계에 불과하였다.

사실 그년들과 몇 번 만나고 이미 합의가 된 상태였고 해결이 된 상태였지만 마누라에게는 아직 협상이 진행이 되고 있는 것으로 말하며 처남댁을 내 집처럼 들락거리며 근친의 늪으로 같이 빠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 후로도 여차하면 나에게 상의를 하는 것이 아니라 마누라에게 상의를 하였지만 시회 경험이 전무 한 마누라는 모든 것을 나에게 일임하였고 그럼 난 자연스럽게 처남댁 집으로 찾아가서는 마치 주인인 냥 행세를 하면서 처남댁과의 유희를 즐겼다.

처남댁과 나의 관계는 내 나이 60이 되도록 계속 진행에 되었다.

그런데 내 나이 61살이고 처남댁 나이 52살이 되던 해에 끊어야 할 일이 발생을 하고 만 것이다.

처남댁에게 생리가 끊기면서 아프다고 빠구리를 거부한 것이다.

다시 내 주변으로 눈을 돌려 새로운 근친을 찾으려 하였다.

하지만 주변엔 아무리 봐도 상대가 없었다.

미치게 힘든 나날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앞에서도 잠시 언급을 하였지만 이번에 알게 된 나와 연배가 비슷한 노인이 알려준 야설을 올리는 곳에서 다른 사람이 올린 야설을 보고서 생리가 끝난 여자들의 경우에도 크림이나 보지에 바르는 크림을 사서 바르고 하면 얼마든지 가능하단 말을 듣고 난 처남댁을 찾았고 처남댁에게 열심히 설득을 한 끝에 한 번 해 보고 아프면 다시는 안 한다는 조건을 달고 난 칠순에 가까운 처남댁 보지에 크림을 바르고 쑤셨더니 처남댁이 하나도 아프지 않고 예전의 기분이 새록새록 나는 것이 좋다고 하기에 다시 난 근친의 세계로 돌아왔다.



초반에 언급을 하였듯이 요즘도 난 처남댁하고 일주일이면 적어도 한 번 이상은 빠구리를 하는 편인데 3년 전에 죽은 마누라에게는 아주 미안한 일이지만 3년 전 마누라가 죽고 삼우제를 지낸 후에 애들이 각기 자기 집으로 가자 난 처남댁을 우리 집에 그냥 남게 하고는 처남 영정 앞에서 첫 빠구리를 하였듯이 마누라 영정 밑에서 처남댁하고 빠구리를 하였다.



그리고 금방도 처남댁이 스스로 나에게 와서는 보지를 벌려주어 빠구리를 하였다.

그렇게 난 첫 빠구리도 근친으로부터 시작하였고 아마 내 생애 마지막 빠구리고 처남댁과 함으로서 내 인생은 근친으로 점철된 인생임을 다시 한 번 더 느껴본다.

하지만 후회는 절대 하지 않으며 또한 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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